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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과
리더스 다이제스트 소속 윌리엄 P. 비먼, 콘라드 키클 기자의 인터뷰

2006년 9월 5일
워싱턴 D.C.

비먼 기자: 장관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9•11 테러 공격 5주기가 다가 오고있습니다. 미국에 일어났던 일과 세계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엄청난 일을 겪었으며, 아무것도 예전같이 않다라고 말합니다.

먼저, 개인적인 차원에서9•11 사태로 장관님은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어떻게 변하셨습니까?

라이스 장관: 9•11 사태는 저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역사를 봐도 그 날만큼 모든 미국인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날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저는 국가안보보좌관이었습니다. 공격이 있기전 그 날 아침,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번째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을 때, 대통령께 전화를 드렸고, 그 때는 사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항공기 충돌이 있었고 저는 또 전화드렸습니다.

그 이후의 일은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국토에 공격을 받았다는 상황에 갑작스럽게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독립전쟁이나 1812년 전쟁 또한 즉각적인 여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미국인의 정신세계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국을 섬나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깊은 유감, 상실감 그리고 분노를 느꼈습니다. 화창한 9월 어느날, 출근길이었거나, 금융중개회사에 가거나 국방부에서 일하던 3000명의 무고한 미국인들이 무정하게 사망했습니다. 저는 또한 이들이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을 뿐 아니라 파괴하려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표물은 우리의 금융센터와 국방부 빌딩, 그리고 우리가 이후에 알게 됐지만, 국회의사당이었습니다. 그들은 미국 권력의 상징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내가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느낌과,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와 우리는 해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먼기자: 아시다시피, 9•11 사태이후 미국의 결속이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글과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많은 면에서 정당 또는 다른 노선별로 극심하게 분열된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달리 하고 싶은 것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이 있을까요? 결속을 통해 우리가 유지시킬 수 있었거나,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을까요?

라이스장관: 하나의 국가로서 결속됨으로써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결속력이 아직도 저변에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 미국은 타격을 받았고, 다시는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국가로서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충분히 돌아볼 만한 시간은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이후 떠오른 질문은9•11 사태로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우리에게 타격을 입힌 알카이다를 추적해야 하는가? 법집행과정을 거처, 아프가니스탄을 해결하고 오사마 빈라덴을 체포하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은 다른 선택, 다른 길을 택했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길을 택하셨습니다. 문제의 근원, 다시 말해, 중동을 악으로 가득찬 환경으로 만들어서 그곳 사람들이 미국에 있는 빌딩을 폭발시킬 정도였던, 증오 사상의 근원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여기에서 분열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알카이다를 그 날의 사건만으로 처리하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던 사람들과, 이 사건을 알카이다를 탄생시킨 여건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시대의 투쟁이자, 이 세대의 투쟁으로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알카이다라는 조직을 파괴한다고 해도, 알카이다를 만들어낸 환경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며, 이러한 환경을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영구적인 평화를 물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일은, 단순히 알카이다를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리고, 어렵고 도전적인 일입니다. 알카이다를 다루는 것도 어렵지만, 그러한 상황을 바꾸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는 이를 2차세계대전에 일어났던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돌프 히틀러가 패배한 이후, 미국은 나치즘을 꺾는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유럽이 안정되어야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민주적인 독일이 중심에 있는 민주적인 유럽을 의미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다시 부상하지 않도록, 민주적인 일본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당장의 위협만을 다루는 것은 충분하지 않았고, 2차세계대전이나 그 이후의 정책은 올바른 것임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왜냐하면, 민주독일 혹은 민주 일본의 동맹자들과 함께 있을 때, 어느 누구도 미국이 다시는 유럽에서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프랑스나 독일이 서로 전쟁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이 역내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당장의 임무뿐만 아니라, 근원과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지를 깨닫습니다.

비먼기자: 물론 장관님께서는, 고귀하고 큰 책무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는 장관님 말씀에 따르면,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명히 우리와 전 세계 동맹국들에게 혜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유럽과 기타국가에서의 여론에 따르면 미국의 이미지는 훼손되었습니다. 이런 이미지를 회복할 전략을 갖고 계십니까?

라이스장관: 우선 우리는 올바른 일을 해야합니다. 때로 이것은 사람들이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는 힘든 일을 의미합니다.

사담후세인이라는 위협을 처리한 것이 정당한 일이었습니까? 후세인은 30만명의 이라크인을 학살하고, 이웃국가 국민들과 자국민들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통제하려했던 미국 조종사들을 위협했습니다. 후세인을 처리한 일이 정당한 일이었습니까? 이로인해 이라크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이라크 어린이들의 영양실조의 원인이 되었던경제재제조치를 해제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후세인을 처리한 일이 정당한 일이었습니까? 이로인해 우리는 달라진 이라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라크는 테러분자들의 은신처가 아닌, 대테러전의 용맹한 전사가 되었고, 국민을 억압하지 않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지지도 측면에서 대가를 치뤄야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대한 역사가 쓰여지고, 이라크가 그 지역의 민주주의와 안정의 기둥으로서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때를 돌아보며,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말할 것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따라서, 어려운 결정은 때때로 인기가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음을 인지해야합니다.

우리는 독백이 아닌, 중동의 사람들과 대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도 우리에게 더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교환 프로그램과 미국에 유학오는 대학생들 그리고 그곳으로 유학가는 미국의 대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습니다. 중동의 사람들은, 전 세계 여타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미국 대통령들이 지난 60년동안 말하기를 꺼려왔던 내용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안정에만 치우쳐 왔습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가끔 중동의 종교인들과 얘기할 때, 그들은 미국인들이 세속적이고 가족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에 오면 거의 모든 곳에서 교회, 회당 또는 사원을 볼 수 있고, 미국국민들은 가족중심적이며, 신앙심이 매우 깊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지역사회에서 이슬람계 미국인을 만나는데, 이들 역시 미국인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관용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용은 그런 사람들을 참아내야하거나, 혹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들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다문화, 다종교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발전한 국가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문화와 종교가 서로 어우러진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낫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러한 미국을 보길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이 미국에 와야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비먼 기자: 좋습니다. 제가 이란에 대해 질문 하나 드리고나서, 제 친구에게 넘겨주겠습니다. 제 친구가…

라이스장관: 알겠습니다. (웃음)

비먼기자: -- 제 친구가 그동안 너무 조용히 있었네요. 지난 번에 인터뷰할 때, 장관님께서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었는데요, 그때 말씀하시길 어느 누구도 이란의 핵무기를 용인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론 대통령께서도 우리가 이란의 핵무기를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었죠. 이 말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란의 핵보유를 용인해야 할까요?

라이스장관: 글쎄요, 우리는 그걸 용인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안되지요. 먼저, 우리는 아주, 아주 열심히 노력을 해야하고요, 이란의 핵무기를 용인하지 않는 효과적인 국제협력을 확보하고자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란이 직시해야 할 사실은 민간 핵 프로그램을 보유할 수는 있지만 핵무기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이고, 만약 핵무기로 이어질 수 있는 핵 프로그램을 보유하기로 결정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또한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서 전혀 아무런 혜택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란에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동맹국들을 방어하고, 전 세계에서 우리의 이익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래서, 안되지요, 제 생각에 그 말과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은 분명히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입니다.

키첼기자: 장관님, 예전에 인터뷰에서 우리가, 즉 미 행정부는 달라진 중동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이라크를 건설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거라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질문인데요, 지금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안정과… 안정과 번영입니까 아니면 여기에는 민주국가 이라크 건설을 포함합니까?

라이스장관: 네, 분명히 민주국가 이라크 건설을 포함해야 합니다. 두 개가 서로 별개로 존재할 수는 없지요. 지난 수 년간 우리가 깨달은 것은 권위주의나 독재정권에서 얻은 것은 거짓 안정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점들을 표현할 수 없었을 테고 그래서 포섭이 되고 거기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억눌린 것들을 표출하거나, 아니면 결국 극단주의의 전개와 같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악성적인 사회에 살게 되는데, 이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정치적 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매일 목숨을 잃는 미국인을 보면서, 정말 우리 군 장병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곳에 나가 있는 우리 외교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경외할 따름입니다. 다른 기관에서 나온 민간인들은 매일 민주주의를 대신해서, 이라크 국민들의 자유와 안보,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매일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일들을 완전히 이타적인 자세로 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특별한 것은, 미국인들이 세계에 베푼 많은 고귀한 행동중에, 1차 세계 대전에서 보여준 것들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묘지를 가보시면 열 여덟, 열 아홉 살 짜리 청년들이 자기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역시 자유를 우리 국경에서 지킨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서 자유를 수호해, 우리 영토가 공격을 받지 못하도록 했던 많은 영웅들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저는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이라크인들, 이라크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지도자들을 협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살된 학생들, 교사들, 이라크 지도자들의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위협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1천 2백 50만명의 주민들이 그래도 투표소로 갔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이것이 힘들긴 하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이 힘들어도 결국에는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되돌아 보면, 정말 필수적인 것이지요. 분명히 항상 그런식으로 결과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여름에, 저는 건국의 아버지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여러분도 워싱턴, 해밀턴, 혹은 제퍼슨 자서전을 읽어보시면 너무 당연하게도 미 합중국은 절대 탄생될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겁니다. 당시 최대 군사 대국과 맞서고 있었을 뿐 아니라, 미국 군인들은 오합지졸에다가 그중 3분의 1은 천연두로 사망했으며, 건국의 아버지들 사이에서도 다툼들이 있었고, 제퍼슨과 해밀턴은 그렇게 좋은 친구사이는 아니었지요. 저는 가끔24시간 뉴스에서 미국의 건국을 중계했다면 그걸 보고 과연 우리 미국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참 매끄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아주 어려운일이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임을 알고 있고, 9•11 사태나 일을 끝내지 않는 대가, 아프가니스탄 같은 실패한 국가를 그냥 내버려두는 대가를 고려해본다면, 우리가 이라크를 완전히 떠난다면 그 대가가 어떠할 지 알고 있습니다.

키첼기자: 거기에 대해서 잠깐 덧붙이자면, 우리가 만약, 이라크 국민들이 민주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 안정적인 혹은 민주적인 국가가 그 지역내에 없다면 그들이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을까요?

라이스장관: 굉장히 좋은 질문이네요. 저는 이라크가 민주주의를 성취하면 주변 다른 지역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거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라고 왜 안되겠어’라고 말할테니까요. 벌써, 그 지역에서 쿠웨이트를 보세요, 쿠웨이트에서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를 했고, 여성들이 처음으로 공직에 출마했습니다. 이집트를 보세요. 처음으로 여러 후보를 두고 선거를 치렀습니다. 이들의 의회 선거가 우리가 바랬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집트는, 현 정부, 심지어 대통령에 대한 비판까지도 완전하게, 철저하게 인정되는 그런 선거를 치르는 상황에서 절대 다시 예전과 똑같아질 수 없습니다. 절대 똑같아 질 수 없지요. 그리고 제가 전체 지역을 놓고 보면, 그러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고, 이라크가 이를 촉진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키첼기자: 지리적 위치를 약간 바꾸어, 부시 행정부는 위협을 막기 위해 선제 공격 독트린을 표명했습니다. 제가 이 말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는데요, 어쨌든 국제 안보에 대한 위협이 더 커지기 전에 위협을 막기위해서 였습니다.

최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북한 정권이 계속해서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미사일을 파괴하기 위해 선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까?

라이스장관: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다루기 위해 그 주변 이웃국들과 아주 중요한 연합을 구성하는 방식을 택해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북한 문제를 다루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아시다시피, 수 년전에 북한이1994년 기본합의서를 위반했을때, 그 이해 당사국은 미국과 북한이었습니다. 이제는 여기에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이 포함되고, 이로써 훨씬 강력한 동맹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제 분명한 것은 미국이 우선 한국과의 동맹을, 그리고, 일본등 역내에서의 동맹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내의 우리 역량을 충분히 유지하여, 북한이 안보 상황에 있어 누가 우위에 있는가를 분명히 알도록 할 것입니다.

대통령도 분명히 했듯, 우리는 북한을 침략하거나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하겠습니가? 북한도 핵무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6개 당사국이 지난 9월 체결한 기본 협정문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북한이 미국의 침략이나 공격을 받을 위협이 전혀없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나 그 동맹국들이 북한의 어떤 도발행위에도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키첼기자: 그럼 이제 현재에서 과거로 얘기를 옮겨보겠습니다. 구소련의 학자로써, 장관님께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베를린에 가서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라고 했을때,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믿었습니까? 사람들은 안 믿었다는 것을 장관님도 기억하실 겁니다.

라이스장관: 그렇습니다.

키첼기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장관님께서 오늘날 전 세계를 봤을때, 향후 수 년내에 사람들, 전문가들을 놀라게 할 만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즉,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붕괴처럼 일반 사람들만큼이나 전문가들도 놀랐던 그런 일 말입니다.

라이스장관: 사람들은 향후 수년간 중동의 변화상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 예측이 되겠습니다.

키첼기자: 민주주의의 발전말입니까?

라이스장관: 더 큰 민주주의의 발전입니다. 그렇지만, 격동의 힘든 과정이리라 생각합니다. 큰 변화는 바로 그렇게 오는법이니까요. 그렇지만, 기자님께서 이를 언급해준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제가 마지막으로 여기서 일한 것이 1989년에서 1991년이었습니다. 저는 냉전말 백악관의 소련 전문가였습니다. 그 후 별로 더 나아진 게 없습니다. 그것은 오랜 변화 기간의 끝이었습니다. 미국이 구소련의 위협을 억제해야 했던 시기부터, 조지 캐논이 말했던 구소련이 자체의 모순을 해결해야만 했던 시기까지의 오랜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유럽의 자유와 독일의 통일 그리고, 구소련의 평화로운 붕괴가 시작되던 시기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뒤돌아보면, 우리는 당시 46년과 47년의 좋은 결정들에 대한 수확을 단지 거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시기를 다시 돌이켜 그들이 어떻게 방향을 유지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그 당시, 이 건물에 왔던 사람이라면 1946년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이 선거에서 48%를 획득하고, 프랑스의 공산주의자들은 46%를 득표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1947년 그리스에 내전이 있었고, 터키에 시민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백만명의 유럽인이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주의 쿠데타로 전복되었습니다. 1948년 베를린이 베를린 위기로 인해 영구히 분단되었습니다. 1949년 구소련은 예정보다 5년 앞당겨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이런 사건들은 단순히 작은 퇴보가 아닙니다. 만약 당시에 사람들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1989년과 1990년, 구소련이 붕괴할 것이고, 동유럽은 평화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로 부상할 것이고, 독일은 마침내 통일 될 것입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루마니아는 나토 회원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궤도위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들은 “당신 제정신이 아니구만.”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 그런 변화의 와중에 있는 그 당시에는 불가능하고, 힘들고, 어렵게 보였던 일들이 종종 후에 다시 되돌아보면, “물론 그게 바로 그런 경우였지.”라고 말하는 일로 된다는 것입니다.제가 지난번 이 자리에 있을때는 그런 큰 변화가 끝나던 무렵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이 큰 변화의 시작점에 있기때문에…

그래서, 또다른 아주 큰 변혁의 시작점에 있는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민주주의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뜻을 같이 하는 국가와 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를 도와줄 그렇게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47년과 48년에는 이렇게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초석을 깔아야 하고, 그것이 10년, 20년, 아니 30년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에 사람들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들이 쉬운 길을, 즉 지름길을 택하지 않아서 정말 기쁘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안정은 충분하다”라고 말하지 않고, 민주주의 발전을 고수해서 기쁘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키첼기자: 장관님, 저에게는 샬로트라는 15살난 딸 아이가 있는데, 샬로트에게 장관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더니, 제 딸이 “장관님께 대선에 출마하라고 얘기해주세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

라이스장관: 샬로트에게 몇 년 후에 샬로트 자신이 대선에 출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웃음.)

키첼기자: 사실, 샬로트는 실제로 정해진 시간내에 그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년 후에 말이죠. 장관님께서는 더 높은 정치적 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는데, 제 딸과 같은 많은 사람들의 그런 여론이 고조가 된다면, 마음이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까?

라이스 장관: 저는 제 인생에서 무엇이 제게 적합한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번도 계획을 가져 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린시절 알라바마 버밍햄에서 자라면서 한번도 꿈꿔본 적도 없었던 일과, 책무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이 시점에서, 저는 제가 무엇을 하고싶어 하는지, 그리고 무얼 하고 싶어하지 않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포츠경영이나 아니면 아마도 스탠포드대학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아마 샬로트를 만나게 되겠지요.

키첼기자: 아주 훌륭한 꿈이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비먼기자: 장관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라이스장관: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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