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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미 이슈

북한의 얼굴들

2014년 3월 15일

(원문 링크: http://www.humanrights.gov/)

유엔 인권이사회 범주: 식량권 침해/고문과 비인도적 처우/차별

북한의 얼굴들:  지성호

북한의 얼굴들: 지성호

이름:  지성호

배경: 기근이 발생했을 때 지성호는 석탄을 훔쳐 시장에 내다팔아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1996년에 열차에서 떨어져 왼손과 발이 으스러졌고 평생 불구가 되었다. 이러한 장애로 인해 2008년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하는 것이 더욱 어려웠다. 동생인 지철호는 그가 위험한 강을 건너 무사히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왔지만 이들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서로 흩어져야했다. 두 사람은 잡히게 될 경우 지니고 있던 독을 삼키기로 했다. 브로커와 종교 단체의 도움으로 그는 목발을 짚고 중국으로 건너가 마침내 남동생 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어머니, 여동생과 재회했다. 한국에 도착한 직후, 이들 형제는 아버지도 북한 탈출을 시도했지만 경비대에 잡혔고 구금되어 있는 동안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 상황:  이들 형제는 현재 한국에서 공부 중이며 자신들이 운영하는 단체인 NAUH(Now, Action, Unity, Human Rights)를 통해 탈북자들을 돕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범주: 임의적 체포와 구금 (출신 성분/연좌제에 의거)

북한의 얼굴들: 지성호

북한의 얼굴들: 지성호

이름:  강철환

배경:  평양에서 태어난 강철환은 할아버지의 지위와 재력 덕분에 비교적 유복한 생활을 했다. 가족이 북한 국적을 포기한 적이 없고 할머니가 일본에서는 조총련 핵심간부, 북한에서 충실한 당원이었지만, 강철환의 조부모는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늘 의심을 받았다. 1977년에 그의 할아버지는 반역혐의로 악명높은 승호리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그는 9살에 불과했지만 가족, 친척들과 함께 요덕 강제수용소 (15호 관리소)에 보내졌고, 잔혹한 환경에서 지내며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그와 가족은 10년 후에 석방되었다. 그는 북한에 계속 살았지만 불법 수신기로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듣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 그는 한국으로 귀순했다. 가족이 요덕 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 7살이던 여동생 강미호는 북한에 남아 2011년에 11살 아들과 함께 요덕 수용소에 재수감었다고 한다.

현 상황: 강철환은 ‘평양의 수족관’ (2001년)이라는 저서에서 요덕 수용소에서 겪은 자신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조선일보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비영리 단체인 북한민주화운동본부(Democracy Network Against North Korean Gulag)의 대표를 맡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범주: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정치범 수용소와 관련한 전반적인 인권 침해

북한의 얼굴들: 신동혁

북한의 얼굴들: 신동혁

이름:  신동혁

배경:  신동혁은 북한 포로 수용소의 ‘완전통제구역’으로부터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개천 (14호 관리소) 수용소에서 ‘표창결혼’한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수용소에서 혹독한 삶때문에 부모와 애틋한 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부족한 식량배급으로 어머니도 경쟁상대가 되어야 했다. 그는 13세에 어머니와 형의 탈출모의를 간수에 신고한 후 이들의 공개처형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지켜보았다고 적었다. 신동혁은 이 탈출 계획을 밀고한 후 나흘동안 손발이 묶인 채 숯불 위에 매달려있었다. 그의 몸이 요동치지 못하도록 살갗을 갈고리로 찍어 관통시켰기 때문에 아직도 그 상처가 남아있다. 몇 년후 그는 동료 수감자와 탈출 계획을 세웠다. 모진 여정끝에 중국에 무사히 도착했고 마침내 한국에 재정착했다.  

현 상황:  신동혁은 북한 인권에 관한 인식 제고를 목표로 하는 비정부 단체인 인사이드 엔케이(InsideNK)를 설립했다. 그는 14호 관리소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담을 전세계에 전했다.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책이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인권 및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철폐를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그는 유엔차원에서 처음으로 만든 ‘북한 인권조사위원회’의 첫 증인으로 나섰다. 2013년 6월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정부 단체인 유엔워치 (UN Watch)로부터 ‘도덕용기상’ (Moral Courage Award)을 수상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범주: 표현의 자유 침해

북한의 얼굴들: 송벽

북한의 얼굴들: 송벽

이름:  송벽

배경:  북한 체제 선전 작가로 활동하다 풍자 작가로 전환한 송벽은 2002년에 한국으로 귀순했다. 7년동안 그는 고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하는 포스터와 현수막을 제작했다. 1990년대 기근이 발생했을 때 굶주림에 허덕이던 송벽과 아버지는 중국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많은 탈북자들처럼 자유를 얻기 위한 그의 노력은 댓가를 치뤄야했다. 아버지는 도강 중 익사했고 그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아사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수년이 지나 그는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오는데 성공했다. 한국에서 새롭게 얻은 자유를 기념하여 그는 ‘자유’라는 작품을 그림으로써 검열받지 않고 화가로서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현 상황:  송벽은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 미술가이자 풍자 예술가이다. 그는 무엇보다 존 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아메리칸 대학교 및 조지아 공과대학교 등을 포함한 미국내 학술기관에서 강연을 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두 차례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12년에 열었다.  

유엔 인권이사회 범주: 식량권 침해

북한의 얼굴들: 이현서

북한의 얼굴들: 이현서

이름:  이현서

배경:  북한에서 자란 이현서는 7살에 처음으로 공개처형을 목격했다. 그녀는 1996년 기근 당시 참혹한 굶주림으로터 벗어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행운아 중 하나였다. 그녀는 1997년에 마침내 중국으로 탈출했다. 중국에서 그녀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송금했고 북한 당국에 발각되어 중단될때까지 지속했다. 그 당시 그녀는 가족이 중국으로 건너가서 결국 동남아로 갈 수 있도록 도왔다.  

현 상황: 이현서는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학생으로 탈북자 옹호활동을 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범주: 임의적 체포와 구금/출신 성분 (연좌제)

북한의 얼굴들: 김영순

북한의 얼굴들: 김영순

이름: 김영순

배경:  김영순과 전 가족은 그녀가 김정일의 첫번째 부인과 친구라는 이유로 연좌제가 적용되어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은 그녀의 동료 무용배우였고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의 생일날 그의 앞에서 공연했다. 김영순은 가족을 잃고 특권적 지위를 상실했다. 그녀는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10년간의 잔혹한 세월을 이겼지만 자신의 부모는 수감 중 사망했다. 북한체제를 탈출하기를 바라며 그녀는 2003년에 한국으로 귀순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북한민주화위원회 여성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2006년에 미국에서 초연된 ‘요덕스토리’라는 유명한 뮤지컬의 안무를 맡았다.

유엔 인권이사회 범주: 강제 실종

북한의 얼굴들: 신숙자, 오해원 및 오규원

북한의 얼굴들: 신숙자, 오해원 및 오규원

이름:  신숙자, 오해원 및 오규원

배경:  독일에서 유학한 한국 경제학자인 오길남은 1985년에 아내인 신숙자와 두 딸을 데리고 월북했다. 오길남은 안정적인 관료직을, 간염을 앓고 있던 그의 아내는 치료를 약속 받았다.  하지만, 그와 가족은 북한에 월북하자마자 즉시 교화소에 수감되었다. 북한 정부는 이후 오길남에게 다시 독일에 돌아가서 한국 유학생을 유인해 데려오라는 지령을 내렸지만 그는 1986년에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탈북했다. 북한에 남아있던 그의 아내와 딸들은 체포되어 요덕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그후 25년을 가족의 생사여부도 모른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2011년에 한 탈북자가 요덕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신숙자 모녀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가족이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을 다시 갖게 된 그는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운동을 벌였다.  

현 상황: 2012년에 북한 정부가 유엔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신숙자는 2012년에 사망했고, 딸들은 평양 외곽에서 살며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