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과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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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스 대사 극동방송 조찬 연설
웨스틴 조선호텔그랜드 볼룸 2010년 3월 4일 7:05 a.m.
‘발전’
연설 내용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장환 회장님, 오늘은 그냥 빌리라고 불러도 될까요? 빌리김, 김은기 사장님, 장익순 이사장님, 김영규 회장님, 귀빈 여러분. 극동포럼에 초대해 주셔서 아주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침 일찍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우리 한미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그렇게 많아서 아주 감동했습니다.
제가 어제 – 좀 있다가 영어로 할게요 – 미국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한국말 못했는데, 어제 나리타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인터넷 서핑, 검색을 좀 했는데, 아주 놀라운 뉴스를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은, 미국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콜롬버스가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써있었습니다. 세종대왕 시절에 한국 탐험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지역을 탐험한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세종대왕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에게 그 새로운 나라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몰라, 아무렇게나 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이름이 ‘아메리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농담을 한 이유는 현재 한미동맹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60년 동안 양국동맹은 그 역사가 600년이라고 해도 더 강력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봅니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이 훌륭한 관계, ‘한미관계 (한국어로)’ 를 발전시켜온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자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해가 바뀌고 제 좋은 친구이자 과거 수십년에 걸친 한미 관계가 낳은 대단한 친구인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아주 기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공동의 역사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돌이켜 보고 미래를 전망하겠습니다. 한미관계가 더 돈독하고 중요하게 될 날이 앞으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어로는 제대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러분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영광입니다. 미국에서 일컫는 ‘가장 위대한 세대’ 로서 한미관계를 공고히 해왔으며 지금도 그 노력을 계속하는 여러분 상당수— 노신영 총리님, 다수 장관님 및 지도자들을 포함—가 참석한 이 자리는 건전한 한미관계를 잘 나타냅니다.
물론 올해는 한국 역사상 암울한 해인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에 특히 과거를 되돌아보아야 하는 중요한 해이며, 한미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사실 저는 워싱턴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유명환 외교 통상부 장관이 면담을 가졌는데, 워싱턴에 있었기 때문에 저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 어떤 분들께는 전에도 드린 말씀이지만, 클린턴 장관은 취임 이후 어디에 가든 미 대외정책의 토대는 영어 D로 시작하는 세 단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어로는 D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바로 방위 (Defense), 개발 (Development) 그리고 외교(Diplomacy)입니다.
작년 무렵부터 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미관계는 방위뿐만이 아니라 개발과 외교에 있어서도 양국이 협력하여 성공을 거둔 좋은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영역에서 계속 협력왔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많은 성과를 이루어 낼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한미관계는 600년의 역사는 아니더라도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저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이 19세기 말 무렵 근대 세계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에 최초로 수교를 맺은 서방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다는 의미있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곤 합니다.
그 이후로 한미관계가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국 관계의 뿌리는 매우 깊습니다. 한반도 자유 수호를 위해 서로 힘을 합친 60년 전 한국전 발발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서도 경험하신 바 있는 1950년대의 그 암울한 시절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특히 올해에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을 비롯해 그 시대를 경험하고 함께 싸웠던 분들을 기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침, 퇴각, 서울 함락, 워커 장군의 “죽음으로 지키라”는 사수 훈령. 부산 교두보.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 중공군의 압록강 도하. 올해 한국전을 다시 한번 새기고 교훈과 희생을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인천 상륙 작전 중 해병들을 태운 불도저를 운전한 위스콘신 출신의 도날드 맥과이어보다 한국전을 더 적절히 표현한 이는 없을 것입니다. 올해 한국전 발발 6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현지 언론사들이 참전용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맥과이어씨는 오래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그 전쟁에 다시 돌아간다면 끔직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제가 겪었던 상황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라고 그저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는 참혹한 전쟁을 형식상 종식시킨 정전 협정을 체결한지 57주년이 되는 해로서 미국과 유엔 파트너들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에는 비극적인 사연을 흔히 접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의 폐해와 분단 국가 분단 민족의 비애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 한미 협력의 씨앗이 뿌려졌고 양국간에 지속적인 우정과 파트너십의 역사가 도래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수십만 개가 있으며, 여러분 다수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빌리 김 목사님, 칼 파워스 병장이 1951년 당시 한 똑똑한 아이를 만나서 미국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자리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변화를 이루어내셨습니다. 그 당시 일어난 일은 아직도 우리 삶과 양국 파트너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종전 후, 우리는 안보 동맹을 유지, 강화하는 한편 함께 방어를 구축했습니다. 많은 퇴역 장교도 이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기쁩니다만, 우리는 한국의 개발 및 외교가 확대되고 강화될 수 있는 방위 체제를 제공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저는 1975년에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당시 개발 부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저보다 좀 젊으신 분들에게 있어 1975년 당시 한국은 지금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는 사실은 기억할 만한 일이며, 제가 미국인들에게도 종종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당시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북한의 최근 일인당 국민소득을 상회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삶은 힘겨웠습니다. 한국인에게 삶은 고됬지만 변화와 희망의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충청남도에서 그리고 여행하던 도시와 마을에서 한국인의 삶이 바뀌는 것 뿐만 아니라 자녀와 가족에 대한 희망도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보았을 때 한국에는 굉장히 특별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엄청난 변화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박태준 회장 일화를 소개하곤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포스코 설립 시절 박 회장은 자신의 철강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차관을 받기 위해 세계 은행을 찾았습니다. 차관 담당자는 소득 흐름, 한국의 거시 경제 자료와 가용 자원을 분석하고 나서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당담자는 포스코라는 신생 기업이 상환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한국이 철강 산업을 시작한 것도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현재로 시간을 돌려놨을 때 잘못 판단한 쪽은 그 담당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수 십년 후에 그 담당자를 우연히 재회하게 되었다고 얼마전 만난 자리에서 들려 주었습니다.
우리는 “제가 그랬었죠” 라고 말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만 박회장은 런던에 한 회의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 결정을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 담당자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궁금하시죠. 그는 “글쎄요. 지금이라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저는 은행가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너무 철저하니까요.
하지만 그 담당자는 자신이 가진 정보에 근거해서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는 “박 회장님, 회장님께서는 사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에 대해 전부 말씀해주신것이 아니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회장님의 의지, 한국민의 의지와 추진력에 대해서는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포스코를 가능하게 하고 한국의 경제적 변화를 가져온 요인입니다.
제가 20세기 한국 최초의 위대한 변화라고 부르곤 하는 이러한 경제적 관계는 미국과 다른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세계 은행으로부터 차관 혜택은 아니지만 제 생각에 미국이 옳은 일을 했다고 기꺼히 말할 수 있는 다른 지원이 있었습니다. 이런 지원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교육열과 재능을 지원하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요? 첫째, 한미 관계— 경제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중 하나입니다. 상품과 서비스에 있어 2009년 양국간 교역 규모가 경기 침제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치인 1천억 달러를 상회하였습니다. 올해도 양국간 교역 규모가 계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인들은 경제 규모가 세계 13위인지, 12인지 아니면 14위인지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순위는 환율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여러분께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서 말씀드리면 이는 잘못된 통계입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겠지만, 저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이 보유한 기록을 보라고 말씀드립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 최대 조선 강국이며, 세계 2, 3위 핸드폰 단말기 생산업체 및 세계 1, 2위 TV 제조업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 기업간에 서너지가 발휘되고 있지만 여러분이 그저 핸드폰을 집어 들거나 TV를 켤때는 잘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 전자는 미국 기업인 코닝사와 성공적으로 합작하여 TV 스크린을 위한 LCD용 유리기판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불과 2주 전에 기아는 미국에서 새 자동차 공장을 공식 설립했습니다. 3주 전쯤에 저는 군산에 위치한 GM 대우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또한 군산에서 미국 기술을 이용하여 전 세계로 수출되는 풍력 터빈을 제조하는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여러분께 더 많은 사례를 제시할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긴밀히 얽혀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 관계로만 볼때 한국과 미국이 2007년에 한미자유무역협정 (FTA)에 합의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난 주 워싱턴에서 톰 빌색 농무장관 및 론 커크 미 무역대표등 많은 인사를 만났습니다. 이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워싱턴에 들르면 사람들이 양국의 경제적 관계에 대해서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특히 FTA관련해서 해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주 오바마 대통령은 FTA 진전을 이룰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언급했습니다. 한미 FTA는 아직 양국 의회에서 비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비준 시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거나 약속을 하지 않더라고 여러분께서 이해할거라고 보지만,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미 정부 관계자들은 한미 FTA에 대해 굳은 의지가 있고 이를 진전시키기 위한 탄탄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을 여러분께 강조합니다. 우리는 한미 FTA의 나머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공유할 수 있는 제안을 수립하는 한편 의회와 이해 당사자들과 계속 긴밀히 협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앞서 말한 방위, 개발 및 외교라는 표현을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이제 한국이 발전을 거둔, 외교의 또 다른 측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는 한국이 달성한 두 번째로 큰 변화로서 바로 1980년대에 민주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중 상당수가 이 변화를 경험하고 실현시킨 주역이기 때문에 저는 이자리에 여러분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또한 교회가 그 당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1983년 젊은 외교관으로서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굉장한 시기였습니다. 그 때를 표현할 다른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시기라고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항상 꽃을 피운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노신영 전 총리께서 잘 알고 계시듯이 때때로 거리는 최루 가스로 자욱했고, 인권은 심각한 문제로서 한미 양국간 의제로 놓였습니다.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한국인은 미래를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항구적인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도록 미래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면 교회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반에서 얻게 된 아주 많은 친구를 생각하게 됩니다. 작년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에 부임한 미국인 외교관으로서 저는 특히 1984년과 1987년 사이에 김 추기경을 방문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한국의 다른 많은 인사들처럼, 김 추기경도 인권에 관심이 있거나 한국 정치 및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를 원했던 의원과 관료를 포함한 미 방문객과의 면담을 기꺼히 수락했습니다. 때로 명동 성당이 시위자와 경찰간에 대치 상황의 구심점이 되고 험난한 시절 숙고와 대화의 장이 되었던 때에 먼발치서 김 추기경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특히 김 추기경과 가졌던 특별했던 한 만남을 잊을 수 없습니다. 1985년 10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부대사가 김 추기경을 인사차 방문했을 때 저도 함께 했습니다. 예방이었는데도 김 추기경은 매우 진지한 말을 했고 이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심사숙고 한후에 김 추기경은 한국 정부가 공권력만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증폭되는 불안을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일한 해답은 정부가 민주주의가 가능하도록 개헌이라는 대담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며 한국인의 90 퍼센트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2010년에서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것은 매우 마땅한 조치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 다수가 또한 그 시대를 살았으며, 그 당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저와 함께 돌아보실 수 있듯이 심지어1985년 이후에도 1987년 6월 한국의 차기 대통령 직선제 결정이 이루어기까지 거의 2년이라는 힘겨운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 2년은 논쟁, 시위, 대결과 최루 가스가 난무했던 시기입니다. 1987년은 한국 민주화 여정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중 “티핑 포인트” 라는 책을 읽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중대한 전환점인 티핑 포인트는 사실 훨씬 이전에 발생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1985년 10월 그날 말씀을 통해서 바로 교회, 시민 사회에서 활동해던 많은 한국인들을 본 것이며 이들을 지칭한 것이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여러분은 부드럽게 세상을 흔들 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한국이 늘 평온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지만, 오늘 이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을 포함해 세상을 부드럽게 흔들었던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나요? 저는 한국의 민주화를 열렬히 지지하며— 이 자리에 정치가분들도 참석해 주셨지만— 한국 민주화의 가장 좋은 점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불만을 표출하는 만큼 한국인들도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후보자들이 정치적 성향을 초월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그 동안 꾸준한 경제 성장을 거두고 한미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부딪혔지만 지속적인 번영과 성숙을 이루어냈습니다. 작년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남북 관계 증진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90년대 외환위기를 극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자뿐만 아니라 과거 정적까지도 오늘의 한국에 기여한 공로를 치하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배경과 더불어, 민주적 변화와 놀라운 경제적 발전이 어우러져, 한국 그리고 한미 관계는 방위, 외교 및 개발에 대한 공동의 노력을 토대로 또 다른 변화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인 안보 동맹, 심지어 경제적 파트너십을 넘어서 매우 특별한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곧 조찬을 해야 하니까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작년 6월 오바마 대통령과 이 명박 대통령은 워싱턴 DC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단순한 성명이 아니라 비전성명이었습니다. 정부 부처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비전과 정부 성명서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비전이 담긴 성명서이며 여러분도 대부분 읽으셨을 것입니다. 공동비전성명은 양국이 추구하는 목표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 아시아 태평양 지역 및 전 세계가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미래를 이루는 것입니다. 공동 성명은 양국 관계와 공동의 노력을 다음 단계로 끌어 올리기 위해 향후 취해야 할 조치를 담고 있습니다.
한미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데 있어 우리는 중요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한반도 과제가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한반도 분단과 이곳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전쟁은 20세기 참혹한 비극 가운데 하나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 냉전 이후의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 완전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한반도가 되는 그 날을 앞당기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 국민의 바람과 일치하는 평화로운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물론 한반도의 비핵화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는 한국에 핵무기가 없듯이 북한에도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지만 자녀를 위한 기회와 21세기 미래에 대해서는 한국민 및 전 세계인들과 동일한 열망과 소망을 갖고 있다고 우리 모두 가슴 저리게 알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더 나은 기회와 인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년 사이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갖게 된 질문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입니다.
국제사회와 동맹국으로서 우리의 대응은 분명하고 이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국과 우리의 동맹국 및 협력국들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유지하거나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어떤 형태로든 무기 확산에 참여하려는 북한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우리는 6자회담 과정에 참가하는 5개 협력국들과 함께 2005년 9월 명시한 ‘평화로운 방식의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매우 적극적인 외교에 대해서는 시간상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여기 계신 분들의 좋은 친구이기도 한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주 베이징, 도쿄, 서울을 방문했던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클린턴 장관도 지난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동일한 사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같은 커다란 도전에 맞서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관계를 신뢰하고 이해하는 수준, 그리고 협력의 필요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복귀하고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협력할 것입니다. 그 길은 열려 있으며,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북한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길을 선택할 경우 미국과 미국의 협력국들은 포괄적이고 조율된 방식으로 응할 것이며, 여기에는 관계 정상화와 영구적인 평화체제가 포함됩니다. 이 모든 것은 – 한국과의 긴밀한 협의와 조율을 통해 – 에너지 및 경제 지원과 함께 협상될 수 있습니다.
저는 남은 시간동안 21세기 공동 비전의 다른 측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기후 변화든 식량 안보든 재정 위기든 우리 외교가 점차 집중하고 있는 국제 현안들을 해결하는데 있어 양국의 파트너십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일입니다. 과거 이라크 문제에 관한 협력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재 진행중이거나 앞으로 진행될 협력, 아덴만에서의 협력에서 아이티에서의 협력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저는 아이티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감동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전역의 교회, 개인, 기업, 단체에서 보여준 염려와 지원에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게 다가와 아이티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물었는지 모르실 것입니다. 이는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점차 올바른 자리에 서게 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이 11월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 개최를 준비하면서 한미 양국 정부는 한국의 의장직과 정상회의가 생산적이고 실재적이도록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성공적인 세계 경제 위기 회복을 위해 진행 중인 중요한 조율을 이끌고 있습니다. 11월 정상회의는 중대한 행사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도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국가 모두와 파트너십에도 중요한 행사입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과 미국이 함께 증진할 수 있는 또다른 공통의 목표는 앞서 말씀드린 3D 중의 하나인 경제 개발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개발 지원의 수혜국이었습니다. 한국 지원 프로그램은 1980년대 초에 끝나고, 이제 한국은 스스로 공여국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언급할 때면 항상 기쁩니다. 왜냐하면 과거 한국의 평화 봉사단원으로서 저는 제 모든 미국 친구들에게 – 사실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신임 평화봉사단장과 미국 국제개발처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 한국은 평화봉사단원을 받았다가 이제는 해외로 파견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과 꼭 젊지만은 않은 한국인들이 이러한 국제적인 책임의식을 가지고 월드 프렌즈 프로그램이나 한국국제협력단, 혹은 교회나 시민 단체 등을 통해 다양한 자격으로 해외로 나가고 있다고 알고 있으며, 이는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수년전 한국에 살았을 때 종종 들었지만 이제는 시대착오적으로 들리는 말 중 하나가 “우리 한국인들은 ‘우물안 개구리 (한국어로)’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제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면 저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볼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이상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개구리는 이제 세계 무대에 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방한 중 청정 에너지를 장려하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한국의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접근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협력해야 하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양국은 세계적인 핵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증가를 지지합니다. 최근 한국이 원자로 수출에 성공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핵 에너지의 안전성과 확산저항성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 상당수가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처럼 대단한 관계와 그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공통의 이해관계와 가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괄목할만한 경제 변화와 민주화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또다른 하나는 바로 우리의 인적 관계입니다.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생각해봅시다. 제가 1975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예산에서 – 혹은 충남지역 도시나 마을에서 – 미국에 가 본 사람은 제 주변에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를 본 사람들 대부분에게 저는 그들이 본 최초의 외국인이이서 이야기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여권을 발급받거나 외국돈을 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인적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빌리는 여러 면에서 그 분야의 개척자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가요? 여러분 가운데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가족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라고 하진 않겠습니다만, 이 중 어림잡아 60-70퍼센트가 손을 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인 약 150만명에서 250만명이 미국에 살면서 그들 고유의 문화적, 경제적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와 원-달러 환율 약세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 해 600,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미국을 방문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2008년말 시행된 비자 면제 프로그램은 우리 경제에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미국인들을 한국에 오게 하고 더 많은 한국인들을 미국에 보내기 위해 교류 프로그램을 항상 확대하고 있으며, 여러분 중 상당수가 이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 중 하나가 – 지난 11월 방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에서 본 것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 한국에 있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던 ‘교육열(한국어로)’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 중 많은 분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교육열에 대해 들은 내용을 여러차례 언급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체계를 칭찬할 때마다 한국인들은 몸서리를 치며 “우리도 문제가 많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열정을 갖고 있으며, 바로 그것이 오바마 대통령이 느끼고 높이 평가하는 바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열정이 더욱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으로부터 그러한 열정을 얻습니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자녀, 즉 그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자원을 미국에 투자하여 모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이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 온 학생들보다 많은 수를 차지합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중국과 인도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계실테지만, 모든 수준의 교육을 포함하면 한국인 학생수가 가장 많습니다. 이는 미국 교육 체계에 대한 찬사가 아니겠습니까. 한미관계의 미래에 대한 신임투표가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교훈을 찾는 우리는, 방위, 개발, 외교 수단을 충분히 발휘해왔고 훌륭한 한국의 파트너들의 참여를 얻은 지난 60년간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과 한국이 과거 어느 때보다 현재 각자가 아닌 함께 해서 더욱 강할 수 있다는 점에 우리 모두 동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협력해야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11월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미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한국어로)” 저는 이것이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도전이 있습니다만, 저는 양국 관계가 여기에 계신 많은 분들이 과거에 그리고 현재 하고 계신 일 덕분에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깊이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중 일부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한국 속담을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속담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이것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맞아요? (한국어로)” 이는 국가간에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한국과 미국이 서로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이 양국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3월 오전 7시에 한국의 가장 저명한 인사들이 ‘한미관계 (한국어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처럼 많이 참석해 주셨다고 워싱턴에 말해야 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아직도 한국어를 공부하느라 애쓰고 있는데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말하는 것, 특히 ‘한미관계 (한국어로)’에 대해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했었습니다. ‘우호관계 (한국어로)’가 맞나요? 아니면 ‘동맹관계 (한국어로)’? ‘파트너십 관계(한국어로)’? 또 무엇이 있을까요? ‘동맹관계 (한국어로)’? ‘혈맹관계 (한국어로)’? 수년전부터 기억하고 있는데요. 수많은 훌륭한 단어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복잡한 관계 (한국어로)’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 다 맞습니다. 모두 다 맞아요. 영광스럽게도 한미관계의 놀라운 성장을 함께 한 참여자로 한국의 놀라운 발전상을 볼 수 있었던 지난 35년간 제가 결론내린 것은 바로 한미관계는 아주,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우리관계 (한국어로)’라고 부르겠습니다. ‘우리관계 (한국어로)’를 위해 여러분이 수고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올해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질의응답시간:
질문: 대사님, 안녕하세요. 늘 그렇듯이 오늘 대사님의 연설도 재미있고 감명 깊었습니다. 특히 대사님께서 한국의 민주화 및 경제 발전에 대해 칭찬의 말씀을 해주셔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미국 대사로 불릴 때 뿐만 아니라 ‘우리 대사님 (한국어로)’으로 불리는 것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 역시 그 호칭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안보 문제, 특히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공통 현안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달라이 라마 간 면담과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는 미중간 미묘한 긴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양국간 긴장 고조는 북핵문제 해결, 특히 자유 국가인 미국과 한국이 대북 문제와 관련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미중간 미묘한 긴장 고조가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 중국, 한국 등 삼국간 협력에 미치는 직, 간접적인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스티븐스 대사: 임 대사님, 감사합니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셔서 대사님과 국제교류재단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임 대사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중국과의 협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6자회담에서 북한을 종용하고 압박하여 비핵화 협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데 있어 중국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매우 잘 협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미중관계는 크고도 복잡합니다. 한중관계 역시 크고도 중요하므로, 저는 한중관계가 강화되고 심화되고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은 긍정적이고, 포괄적이며, 협력하는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중관계에 대해 언급하신 사안들 중 일부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긍정적인 방식으로 협력하여 해결하려는 문제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짐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이 오늘 베이징에서 중국 관계자들을 만나 그러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려는 이유입니다. 북한 문제에 관한 공통의 노력에 관해서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표가 일주일 전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베이징을 방문한 점에서 보듯 중국이 한국과 미국 양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렇습니다. 많은 현안들로 인해 양자 관계는 복잡합니다. 북한과의 협력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의를 잃지 않을 것이며, 중국이 미국과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의 중요성을 계속 이해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