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006년도 국제종교자유보고서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 발간 자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은 “종교적 믿음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종교단체의 활동을 포함하여 종교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공인받은 관변 조직들에 의해 철저한 감독을 받는 종교 활동만을 용인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악의 수준이던 북한의 종교의 자유 존중 상황은 본 보고서 조사대상기간 중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북한 정권은 비공인 종교단체들에 대한 탄압을 계속해오고 있다. 최근 탈북자와 선교단체, 비정부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 전향한 신자,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 선교단체들과 연계를 맺고 있는 주민,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중국 정부에 의해 본국으로 송환된 탈북자들 중 해외에서 외국인이나 선교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밝혀진 주민들은 구금과 가혹한 형벌에 처해지고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과거 수 년간 지하 기독교인에 대한 구금과 처형이 정권에 의해 꾸준히 자행되어왔음을 고발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되어 있고 최신 정보를 수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본 보고서 조사대상기간 동안 이와 같은 행위가 계속되었는지 여부는 검증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있었다. 북한 정부는 정부가 주관하는 종교의식에 외국인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종교의 자유를 대하는 북한 내부의 사회적 태도와 관련된 정보는 전혀 수집할 수 없었다.
미국 정부는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상태이다. 2001년 이래 미 국무장관은 북한을 국제종교자유법(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Act)에 의거 종교의 자유를 특별히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특별관심대상국(Country of Particular Concern)’으로 지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다른 국가들과의 양자회담이나 다자간 국제회담에서 최악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를 꾸준히 제기한 바 있다. 북한 정부는 자국 내에 체류 중인 외국정부의 사절들이나 기자, 기타 방문객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 내 인권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 보고서는 과거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수집된 인터뷰, 언론보도, 비정부기구 보고서, 선교사 및 탈북자 증언 등을 기초로, 가능한 경우 최근 북한을 방문한 인사나 중국 접경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정부기구 관계자들로부터 입수한 보고서로 자료를 보완하고 있다. 탈북자 증언은 해당 탈북자들의 탈북 시기와 비정부기구와의 접촉 시점 사이에 시간적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의 정확한 인권 상황을 반영하기에는 적시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본 보고서는 되도록 구체적인 자료 출처와 시기를 명시하고 있으며,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 검증을 거쳤다.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제한적일 수도 있는 본 보고서는 최근 몇 년 동안의 북한 내 종교의 자유 실태를 보여준다.
섹션I. 종교인구분포
북한의 국토 전체면적은 약 47,000평방 마일이며 인구는 2,270만 명으로 추정된다. 신자수는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했으나 정부 추산에 의하면 개신교도 1만 명, 불교도 1만 명, 천주교도 4천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남한의 교회 관련 단체들이 추산하는 신자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 그 외에 전통적인 종교운동에 기원을 둔 천도교 청우당이 정부 승인 아래 약 4만 명의 당원을 두고 있다. 2002년 조선천주교인협회 회장의 말을 전한 남한 측 기사에 의하면 북한에는 사제가 없으며 평양 소재 장충성당에서 신도들에 의해 매주 미사가 집전되고 있다. 북한 국영방송 보도에 의하면 2005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거 당시 추모미사가 장충성당에서 열렸으며 전국에서 가정 단위로 미사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에는 평신도가 운영하는 두 개의 개신교 교회—봉수교회와 칠골교회—와 장충성당이 설립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세 곳의 교회는 1988년 이래 평양에서 문을 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교회들은 국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두 개신교 교회 중 한 곳은 고 김일성 주석의 모친이자 장로교 집사였던 강반석의 기념교회로 설립되었다. 남한의 한국장로교회는 북조선기독교연맹과의 협의를 거쳐 평양에 새로운 교회를 신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7월 유엔인권위에 제출된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에는 500개소의 ‘가정 예배소’가 있다. 북한 정부는 가정 예배소의 정의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국가의 통제를 받는 북조선기독교연맹의 하부 조직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지하교회’는 정부의 공식 승인을 얻지 못한 상태로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비정부기구들은 북한 내에 500~1,000개의 지하교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이러한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인의 접근을 허용되고 있지 않다. 1953년 이전부터 신앙을 가지고 있던 일부 노령층 신도들은 지난 수십 년간 비밀리에 신앙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에는 300여 개로 추정되는 불교 사찰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찰들은 문화유적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일부 사찰에서는 종교활동이 허용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조선의 문화유산을 보전”하려는 목적에서 일부 불교 사찰과 유적에 대한 개•보수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5년 10월에는 남한과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전 당시 파괴된 신계사 보수 과정을 참관했다. 이 공사에 소요된 비용은 남한 정부와 해외 관광객들이 부담했다. 공사 완공은 2007년으로 예정돼있다. 남한에서 파견된 승려 한 명이 2004년 이래 신계사에 상주하고 있지만 북한 내 불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직자로서의 역할보다는 관광객들을 위한 가이드의 역할에 주로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영방송은 개성 영통사 복원이 2005년 초로 완료되었다고 보도했다. 2005년 10월에는 북한과 남한 그리고 일본측 참가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중건식이 거행됐다. 영통사를 방문했던 평양 주재 외교관들에 따르면 현지 사찰에 현재 승려 2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앞으로 인원이 추가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국영방송은 북한 내 여러 장소에서 법회가 열렸음을 강조하면서 남북통일이라는 주제와 연결하여 그 의미를 확대시켰다.
러시아정교회는 평양 내 교회 건립 공사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으며, 이 사업은 2002년 김정일이 러시아 현지의 정교회 성당 한곳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착수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최초로 건립되는 이 교회는 2006년 8월 완공 예정이다. 러시아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인 사제가 봉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에 체류하는 외국인 중 일부는 이들 교회에서 한국어로 진행되는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북한을 방문했던 외국인들 가운데 몇몇은 교회활동이 각본에 의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하면서 설교에 정권을 옹호하는 정치적인 내용과 종교적인 내용이 함께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몇 년간 평양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했던 외국의 방문자들은 관광버스를 탄 신도들이 단체로 교회로 수송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종교단체들에 대한 정부 통제의 수준을 외부인이 파악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감시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2006년도 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중앙종교단체들 중 어느 한곳도 지방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2003년 이전에는 다수의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러나 2003년 북한 정부가 유엔 핵사찰단을 추방한 이후로 종교 관련 방문자의 수는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06년 4월 남한의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최창화 몬시뇰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가자 61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했다. 방문 기간 중에 조선천주교인협회는 남한과 공동으로 바티칸을 방문하여 교황과의 만남을 가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2006년 봄에는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주교가 북한을 방문하여 남한의 천주교 관련 단체에서 제공하는 모든 대북 지원을 한국 카리타스를 통해 전달하고 관련 사안들을 남북 협력 창구를 통해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2005년 6월에는 한국 조계종 총무원장이며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장인 법장 스님이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 5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의 저자인 릭 워런 목사는 2007년 3월 15,000명의 북한 신도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해줄 것을 북한 정부로부터 요청받았다고 2006년 7월 발표했다. 워런 목사는 2007년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북한을 사전 답사할 예정이었으나 7월 4~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방북 일정이 연기됐다.
북한 국영방송에 따르면 2005년 10월 북조선기독교연맹 대표단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성결교회 주관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2005년 12월에는 평양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완공된 이후에 사제로 봉직할 예정인 사제후보자들이 사제 훈련과 서훈을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출국했다.
해외 종교활동은 인도주의적 구호활동과 연장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으며 국제 종교 구호 단체들은 북한의 식량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국제 불교 단체인 JTS (Join Together Society)는 1988년 이래 라진-선봉 경제무역지대 내에 미취학 아동을 위한 식료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라면 공장은 2001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북한에서 여러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통일교 재단은 평양에 종파를 초월한 종교시설을 건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섹션II. 종교자유 현황
법적/정책적 토대
헌법에는 “종교적 믿음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단체의 활동을 포함하여 종교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공인된 관변 조직들에 의해 철저한 감독을 받는 종교활동만을 용인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헌법은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 질서를 해치는 데 이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경을 비롯한 종교관련물을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며 이를 어길 경우 징역이나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김정일과 고 김일성을 우상시하는 개인숭배는 북한 정권의 이념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으며 때때로 국교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기아와 권력승계 이후 김정일 정권은 사실상의 지배이념으로서 주체사상을 대신하여 ‘선군’ 정책을 점차 강조해오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여전히 중요한 지배이념으로 남아있다. 주체사상은 북한 체제와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고취하는 동시에 국가의 이념과 권위에 순응하도록 종용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종교적 믿음 등을 이유로 국가와 사회의 필요를 대변하는 최고권위자로서의 지도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는 국익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가혹한 형벌에 처해진다.
제헌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문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한국전 기간(1950~1953)과 종전 직후에 북한 정부는 다수의 종교운동가들을 “반혁명적”이라고 규정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이후 처형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정부는 1970년대 초 개정헌법에 ‘반종교 선전의 자유’ 조문을 삽입하여 종교탄압을 명문화했다. 1980년대 말 김일성의 종교에 대한 ‘긍정적 해석’에 따라 종교차별정책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정권은 일부 공인 종교단체들의 설립을 허용했다. 이런 단체들은 해외 교회단체나 국제구호기구들과의 대화창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공인 종교단체의 대표들과 접촉한 외국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몇몇 대표들은 실제로 신앙을 가진 종교인들로 보였지만 교리나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문외한인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비정부기구들에 따르면 이들 종교단체는 외국의 교회단체나 국제구호기구들의 상대역을 하고 있을 뿐 종교활동을 보장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은 수행하지 않고 있다. 1992년 개정헌법에서는 종교집회를 허용했으며, “종교건물을 짓는” 권리를 보장하고, 반종교 선전의 자유 조문을 삭제하였다.
남한의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들은 남북화해를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본 보고서 조사대상기간 동안 남한의 불교•기독교 단체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 측과 협의를 갖고 문화교류 활동을 벌였으며 행사 말미에는 통일기원 공동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이런 교류는 북한 국영방송 보도를 통해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지만 진정한 종교의 자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북한에는 수 개의 신학 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있다. 기독교와 불교 성직자를 양성하는 3년제 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1989년 김일성대학에 종교학 강좌가 개설되었으며 졸업생들은 보통 해외무역 부문으로 진출한다. 2000년 해외 선교단체의 지원으로 개신교 신학교가 세워졌다. 최소한 한 곳 이상의 해외 후원기관을 비롯한 비판론자들은 해외의 종교 관련 비정부기구들로부터 원조를 획득하기 위한 유일한 목적에서 신학교가 설립되었다고 비난했다. 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보이는 조선기독교연맹은 신학교에서 채택할 커리큘럼 작업에 참여했다. 2003년 9월 성직자와 전도사를 양성하는 대학원 과정인 평양 신학원의 건설이 완공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종교자유의 제한
통일연구원(KINU)에서 발간한 2005년도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정권은 공인 종교단체들을 외부 정치선전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종교시설을 출입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은 대개 종교시설을 ‘외국인 참관지’로 인식하고 있다. 통일연구원은 지방에 교회나 종교시설이 운영되지 않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일반 주민들은 여전히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종교인들의 일상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공인 종교단체에 소속된 회원들은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몇몇 보고서는 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외국인이 참가하는 종교 의식을 비롯하여 상당수의 북한 신자들이 정권에 의해 동원된 인원이라는 정황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승인된 교회에 제공된 자금과 물자가 조선노동당(북한 내 유일당)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확인되지 않은 보고에 의하면 신자의 자녀라 하더라도 본인이 신앙을 갖지 않은 경우 정부 조직에서 중간관리자급의 보직에 채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였다면 그런 배경을 가진 주민은 가혹한 형벌이나 심지어 투옥에 이르는 광범위한 차별을 겪었을 것이다. 국경 선교활동과 연계된 지하기독교도들은 반동분자들로 간주되고 있다.
2001년 유엔인권위는 북한 정부가 자국 내 종교자유 현황에 대한 최신자료를 제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인권위는 또한 종교의 자유와 관련한 정부의 행태에 우려를 나타냈으며 “인권위가 입수할 수 있었던 정보를 근거로 판단할 때 종교활동에 대한 탄압 혹은 강도 높은 방해 활동이 자행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인권위는 북한 정부에 종교단체 소속 신자수와 종교시설현황 등의 통계수치에 관한 최신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자국 내 종교인들의 “종교활동 수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취한 실질적 조치들”을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 2002년 북한 정부는 유엔인권위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북한 정부는 “3년간의 한국전에서 많은 신자들이 사망했고, 노령층은 대부분 사망했으며 청년층에서는 종교를 갖는 비율이 적기 때문”에 신도수가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일연구원 2006년도 북한인권백서는 “북한이 오로지 정치•경제적 목적에서 종교활동을 이용하고 있다. 즉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해외로부터 인도주의적 지원을 확보하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종교자유의 억압
북한 정부는 체제가 용인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활동 참가자를 포함하여 모든 반대 세력들을 엄정히 다스리고 있다. 해외 종교•인권 단체들은 지하 기독교 신자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구타•체포•고문•살해 위협에 처해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다수의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최근 수 년간 북한 내 수감시설에 수용된 적이 있던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감된 수형자들은 다른 수형자들보다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다. 2001년 한국에 입국한 한 탈북자는 자신의 소지품에서 성경이 나왔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몇 년간 일부 탈북자들은 북한 정부가 1990년대 초 이래로 각종 생화학무기를 인체에 실험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정치범이나 종교범들이 이런 실험의 구체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북한은 외부인이 위와 같은 주장들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비정부기구와 탈북자들은 최근 몇 년간 북한 정부가 반체제인사들을 처형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처형자들 중에는 전도나 중국 선교사와의 접촉 등 종교활동과 관련된 인사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들은 최근 수 년간 비공인 종교단체들에 대한 억압과 박해의 수위가 높아졌다고 증언하고 있으나, 현 상황에 관한 정보는 입수가 매우 제한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북한 국내와 중국 접경지역에서의 종교관련 인사들과의 접촉은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탈북자와 선교단체, 비정부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 전향한 종교인,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 선교단체들과 연계를 맺고 있는 주민,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중국 정부에 의해 본국으로 송환된 탈북자들 중 해외의 외국인이나 선교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밝혀진 주민들은 구금과 가혹한 형벌에 처해지고 있다.
본 조사대상기간 중 남한 방송 보도와 2003년도에 탈북한 북한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내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은 주민은 정치범으로 간주되어 가혹한 형벌에 처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징역을 비롯하여 적법한 근거 없이 무기한 계속되는 구금, 고문 혹은 처형이 포함된다. 북한 정부는 중국 북동부 접경지역에서 남한 종교단체들의 후원을 받아 수행되는 구호 및 탈북자 지원 활동에 인도주의적 목적뿐만 아니라 정권 전복을 위시한 정치적 목적도 포함된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조선사회민주당 기관지는 “제국주의자들과 반동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기 위해 종교를 포함한 이념•문화적 침투를 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2006년 3월 남한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손정남에게 사형을 언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정부기구들은 손정남에게 사형이 언도된 실제 이유는 그가 중국에서 기독교단체들과 접촉했고 북한 내에서 전도 활동을 벌였으며 남한에 있는 자신의 동생과 정보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이러한 보고에 대한 외부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으므로 손정남의 죄목에 대한 북한 정부의 주장이나 처형 집행 여부는 검증이 불가능했다.
2006년 4월 남한 법원은 김동식 목사 납치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유영화에게 10년형을 선고했다. 중국 내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였던 김동식 목사는 2000년 중국-북한 접경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실종됐다. 그는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을 지원하던 중 북한 요원들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북한 정부는 이러한 보고에 대한 외부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으므로 김 목사의 행방에 관해서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비정부기구들은 최근인 2001년까지 북한 정부가 ‘교육’을 빙자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을 색출하고 있으며, 이는 정기적인 단속을 통해 종교인사들을 검거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보고했다.
최근 수 년간의 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중국 접경지역에서 선교사업을 벌이는 인사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지급되는 현상금을 인상했다.
종교를 이유로 구금되어 있거나 투옥된 주민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의하면 적지 않은 수의 주민이 종교적 신념이나 활동 때문에 구금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용소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굶주림과 강제노동이 일상적으로 관찰된다. 외부로부터의 방문자들은 수형자들이 족쇄나 목줄, 쇠사슬로 묶여 이동하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위생상태 역시 최악으로 수개월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강제개종
강제개종에 관한 보고는 전무하며, 미성년 미국 시민의 납치나 본국 송환 거부 등의 사례도 보고된 바 없다.
섹션III. 사회적 억압 및 차별
종교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태도에 대한 정보는 입수할 수 없었다. 북한 정부는 자국 내에 체류 중인 외국정부의 사절들이나 기자, 기타 방문객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가 내 인권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섹션IV. 미국 정부 정책 미국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상태이며 공식외교사절도 파견되어 있지 않다. 2001년 이래 미 국무장관은 북한을 국제종교자유법(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Act)에 의거 종교의 자유를 특별히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특별관심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다자간 포럼이나, 특히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국가들과의 양자회담 등의 기회를 빌어 북한에서의 종교의 자유에 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추후 미국과 북한간에 추진될 모든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에 관한 논의가 반드시 포함될 것임을 공언했다. 2005년 4월 몇몇 국무부 관리들이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과 2004년도에 제정된 북한인권법(NKHRA)의 이행을 위한 미국 정부의 조치들에 관해 설명했다. 국제종교자유대사는 이들과 함께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통해 최악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기회 있을 때마다 일깨워왔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미 의회는 2004년도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2005년 8월 부시 대통령은 북한인권법에 따라 제이 레프코위츠를 북한인권특사로 임명했다. 레프코위츠 특사는 이후 남한과 일본을 포함하는 여러 나라들을 상대로 북한으로 하여금 자국 내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종교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중단하도록 촉구하는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하도록 요구해왔다.
2005년 4월 제61차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서 미국 정부는 각국 정부들과 공조하여 인권 상황과 관련하여 북한 정권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3년 연속으로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전반적이고 광범위하게 만연해있는 열악한 인권 상황을 지적한 보고서들에 대한 깊은 우려와 함께 국제사회가 이러한 보고서의 내용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반 여건을 제공하지 않는 북한 정부의 태도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 결의안은 북한 정부로 하여금 자국이 비준한 인권규약 하의 의무들을 이행하고 인도주의적 구호 기구들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자유로운 입국을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5년 11월 미국은 유엔정기총회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유사한 결의안을 공동 발의함으로써 유엔총회 차원의 결의안을 최초로 통과시키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5년 미 국무부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감독 및 보고 기능을 개선•확대하도록 NED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에 49만 6천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제공했다. 또한 국무부는 북한 정권이 인권 탄압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하여 일련의 회의와 제반 활동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RFA (Radio Free Asia) 역시 정기적으로 한국어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정책적으로 미국인의 북한 방문을 허용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교회와 종교단체들은 식량 및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주민을 돕기 위한 조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도 북한은 교역과 인권을 연계시킨 1974년 잭슨-바닉 수정조항에 따른 경제제재 하에 놓여 있다. 2001년에 특별관심대상국으로 지정된 이래 북한은 국제종교자유법에 의해서도 경제제재 조치를 받고 있다.
2006년 9월 15일 발간